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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 10·19사건 여수·순천사건, 麗水順天十一九事件개요 1948년 10월 19일부터 10월 27일까지, 전라남도 여수시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군인들이 동족을 학살할 수 없다는 것과 38°선을 철폐하고 조국통일을 이루자는 명분으로 제주 4·3사태 진압을 위한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순천 등지까지 무력점거를 확산시킨 사건이다. 배경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단선단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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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 10·19사건 여수·순천사건, 麗水·順天 10·19事件개설 ‘여수ㆍ순천 10ㆍ19사건’(이하 여순사건)은 법적으로 “정부 수립의 초기 단계에 여수에서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4ㆍ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으로 인하여, 1948년 10월 19일부터 지리산 입산 금지가 해제된 1955년 4월 1일까지 여수ㆍ순천지역을 비롯하여...
- 시대 :
- 현대
- 유형 :
- 사건
- 분야 :
- 정치·법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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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 壬午軍亂역사적 배경 군란의 배경을 단지 민씨척족정권(閔氏戚族政權)에 대한 대원군을 중심으로 한 수구파(守舊派)의 정쟁(政爭)으로만 볼 수는 없다. 고종을 비롯한 민씨척족정권이 개화정책을 추진해 일본과 구미제국과의 교섭통상관계가 이루어지면서 개화파와 수구파의 반목이 점차 심해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개화파...
- 시대 :
- 근대
- 발생 :
- 1882년(고종 19) 6월 9일(음력)
- 성격 :
- 정변
- 유형 :
- 사건
- 종결 :
- 1882년(고종 19) 7월 13일(음력)
- 분야 :
- 역사/근대사
- 관련 인물/단체 :
- 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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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기 壬午軍亂記글에 이어서 여섯 개의 장회를 안배하여 임오군란의 경과를 차례로 제시했다. 장회는 다음과 같다. ①군사의 불평, ②창리의 작간 군사의 분기, ③군란의 폭발, ④군란의 제2일, ⑤민 왕후와 청국 구병, ⑥군란의 결과. 내용 1882년(고종 19) 흥선대원군의 섭정으로 부국강병에 힘입어 군기가 일신되었다. 하지만 민...
- 시대 :
- 근대
- 유형 :
- 작품/문학
- 분야 :
- 문학/고전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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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 군대의 반란과 외침의 가속화, 임오군란 壬午軍亂창덕궁을 탈출해 충주 장호원에 있는 민응식(閔應植)의 고향집으로 피신했다. 이날은 왕십리, 이태원 등 도시 근교에서 힘들게 생계를 꾸리는 하층 빈민들도 군란(軍亂)에 가세했다. 하급 군인들 중에는 이곳 출신들이 많았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고종은 대원군에게 정권을 넘겨 준다. 대원군은 곧바로...
- 시대 :
- 18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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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손 金長孫왕십리 행수(行首) 송창갑(宋昌甲)에게 전달하여 임오군란의 도화선에 불을 당겼다. 그러나 7월 13일 흥선대원군이 청나라 군사에 의해 피납되고 군란은 실패하였다. 군란 주모자로서 정의길·강명준·유복만·홍천석(洪千石) 등과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에 수감되었다. 8월 23·24일 양일간에 있었던 금위영(禁衛營)의...
- 시대 :
- 근대
- 출생 :
- 1820년(순조 20)
- 사망 :
- 1882년(고종 19)
- 유형 :
- 인물
- 관련 사건 :
- 임오군란
- 직업 :
- 주모자
- 성별 :
- 남
- 분야 :
- 역사/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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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정세에 민감한 변신의 명수맺게 된다. 참으로 그동안 지탄해 마지않던 ‘서양 오랑캐’와 손을 잡게 되는 첫 순간이었다. 미국과 통상조약을 맺은 2개월 뒤에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이 군란은 구식 군대가 주동한 것이었지만 흥선대원군을 옹호하고 민씨를 제거하려는 정치적 음모가 깔려 있었다. 이때 그는 톈진에 계속 남아 있다가 군란의 소식...
- 출생 :
- 1835년
- 사망 :
-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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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그들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공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데 근거한 것이다. 내용 『젊은 그들』의 시대 배경은 임오군란(壬午軍亂, 1882년) 1년 전부터 시작하여 군란 후 대원군이 재집권했다가 청국(淸國)으로 납치되어 간 직후까지 약 1년동안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복돌이라는 가명의 상노로 꾸민 이인화가 민씨 일파의...
- 시대 :
- 근대
- 유형 :
- 작품/문학
- 분야 :
- 문학/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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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원경(元卿), 金壽鉉정사(冬至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혼란한 대내외 사정을 알렸다. 그 뒤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등을 지내다가 1882년 임오군란 직전 형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군란이 수습된 그해 10월에야 정식으로 취임하였다. 또, 군란이 일어나자 흥선대원군이 종척집사(宗戚執事)로 임명하였지만 이에 응하지 않았다. 후에 예조...
- 시대 :
- 근대
- 출생 :
- 1826년(순조 26)
- 사망 :
- 미상
- 경력 :
- 예조판서, 공조판서, 이조판서, 의정부좌우참찬, 의정부좌찬성
- 유형 :
- 인물
- 직업 :
- 문신
- 성별 :
- 남
- 분야 :
- 역사/근대사
- 본관 :
- 광산(光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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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조약 濟物浦條約續約)으로 되어 있다. 역사적 배경 임오군란 이후 청일 양군의 한성진주와 흥선대원군의 청국 납치 문제 등이 민씨정권의 재집권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이후 군란 뒤처리를 위한 조ㆍ청ㆍ일 3국의 절충 협의가 다각도로 벌어지게 되었다. 일본은 군란 때 일본세력의 조선 침투에 민족적 의분을 품고 있던 병사들과 시민...
- 유형 :
- 사건
- 분야 :
- 역사/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