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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롤백 (전술) (관련어 강경책) Rollback, 巻き返し
    롤백(rollback)은 정치학에서 한 나라의 주요 정책들을 강제로 변화시키는 전략으로, 보통 정권을 교체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국가의 확장을 막는 것을 뜻하는 봉쇄 정책, 국가의 긴장 관계를 완화하는 데탕트와는 대조된다. 롤백이라는 용어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보급되었으나 실제 이 용어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
    도서 위키백과
  • 홍건적과 왜구 홍두적
    져 강화도는 물론 개경의 치안까지 위협하게 되었다. 이들은 1375년부터 1388년까지 14년간 무려 378회나 고려의 해안을 침략해왔다. 고려는 왜구에 대한 강경책을 펼치며 1376년 최영의 홍산대첩, 1380년 나세·최무선의 진포대첩, 이성계의 황산대첩, 1383년 정지의 관음포대첩 등을 통해 왜구를 제압했다. 특히...
    시대 :
    1359년~1389년
  • 연개소문 淵蓋蘇文
    져 있었다. 당나라는 서쪽의 고창국(高昌)을 제압하고, 북의 튀르크를 멸망시킨 뒤 동북아시아 쪽으로 진출할 기회를 노렸다. 고구려는 수나라에 대해서는 강경책을 사용했지만 당나라가 건국된 이후로는 온건책을 폈다. 하지만 연개소문이 집권하면서 당에 대해서도 강경책으로 돌아섰다. 연개소문이 부여성에서 발해만...
    출생 :
    미상
    사망 :
    665년 혹은 666년
  • 전한시대, 한무제의 치적
    無爲)의 노장 사상에서 유위(有爲)의 정치 체제로 전환하였다. 또 수십 년 동안 북쪽의 흉노와 취해오던 화친정책을 굴욕적인 것이라 판단하여 공격 위주의 강경책으로 전환하였다. 무제는 자기 자신의 솜씨를 한번 휘둘러 유사 이래의 대업을 이룩해보겠다는 자신에 차 있었다. 무제가 첫 번째 시도한 것은 중앙 집권의...
  • 무왕 武王
    이루지 못하였다. 대문예 암살 미수 이후 발해는 다시 당의 마도산(馬都山: 지금의 하북성 산해관 부근)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발해의 대당강경책은 730년 이후 거란과 해(奚)가 돌궐과 함께 다시 당을 공격하기 시작한 국제적 상황에 편승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734년 돌궐의 비가가한(毗伽可汗)의...
    시대 :
    고대/남북국/발해
    출생 :
    미상
    사망 :
    737년
    경력 :
    발해 제2대 국왕(재위: 719∼737년)
    유형 :
    인물
    관련 사건 :
    발해 장군 장문휴(張文休)의 등주(登州) 공격(732년 9월)
    직업 :
    성별 :
    분야 :
    역사/고대사
  • 통어영 統禦營
    기미책을 활용하여 후금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고 회유함으로써 침략을 막고자 하였다. 하지만 광해군의 대청 정책에 반기를 들고 집권한 인조는 대청 강경책을 수립하고 대륙의 정세변화에 대응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강경책을 실행하는 데는 국방상의 대비도 중요하였다. 당시 전략적 요충지로 각광받고 있는...
    시대 :
    조선후기
    성격 :
    수군관청
    유형 :
    제도
    시행일 :
    1633년(인조 11)
    분야 :
    역사/조선시대사
  • 망이·망소이의 난
    썼다. 하지만 망이와 망소이는 조정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해 9월 예산현을 쳐부수고 감무를 살해하는 등 더욱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에 무마책에서 강경책으로 방침을 바꾼 정부는 그해 12월 대장군 정세유와 이부를 남적처치병마사로 삼아 이들을 일망타진하게 했다. 이때는 이미 조위총의 난이 진압된 뒤라 조정...
  • 백제 10대 왕, 분서왕 백제 제10대 왕, 汾西王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분서왕은 304년 한나라 군현세력에 대한 공격을 단행하여 낙랑의 서쪽 현을 빼앗기도 했지만 결국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피살당했다. 두 왕의 연속적인 죽음은 한 군현세력에 대해 강경책을 펴왔던 고이왕계의 동요를 가져왔고, 그뒤 고이왕계에 의해 밀려났던 초고왕계의 비류가 왕위에...
    출생 :
    미상
    사망 :
    304(분서왕 7)
    국적 :
    백제, 한국
    재위 :
    298년∼304년
    도서 다음백과 | 태그 한국인물 , , 한국사
  • 하마스 이슬람 저항 운동, HAMAS
    간 무력 충돌이 격화되자 가자 지구를 중심으로 강력한 지지를 얻게 되었다. 샤론은 PLO를 인정하지 않고 유대인 정착지를 확대하는 등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책을 썼는데 여기에 PLO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하마스의 무력 투쟁론은 더욱 지지를 받게 되었다. 하마스는 2001년 이후 이스라엘 내에서 한동안 중단...
    도서 다음백과 | 태그 테러 , 이슬람교 , 종교
  • 교조신원운동 敎祖伸寃運動
    명이 서울에서 복합상소(대궐 앞에 엎드려 임금께 호소하는 것)로써 항거했으나 별로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정부에서 상소를 올린 주모자들을 체포하는 등 강경책으로 나오자 서병학 등은 적극적인 시위 집회 방식을 택하였다. 4~5월에 열린 제2차 교조신원운동인 '보은집회'에서는 교조신원의 구호를 넘어 '척왜양창의...
  • 부마민주항쟁 부마민주화운동, 釜馬民主抗爭
    시내는 한때 치안부재의 상태가 되기도 했다. 10월 20일 정부는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하여 505명을 연행하고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는 등의 강경책으로 진압했다. 결과 부산에서 1,058명, 마산에서 505명이 연행되었고, 이 중 87명이 군법회의에 넘겨졌으며, 20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위수령이 발동된...
    분류 :
    국가기념일
    날짜 :
    매년 10월 16일
  • 남연군 분묘 도굴사건 에른스트 오페르트 도굴 사건, 南延君墳墓盜堀事件
    벌였으나 사상자를 내고 달아났다. 이 사건은 국외에도 널리 알려져 젱킨스가 기소되는 등(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남) 많은 파문을 일으켰으며, 대원군이 천주교탄압령을 내리고 대외강경책을 더욱 고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페르트는 이 사건 이후 〈조선기행 A Forbidden Land:Voyage to the Corea〉이라는 기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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