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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의 출신 및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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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894년 갑오농민전쟁에서 농민군의 총대장으로 활약한 혁명가.

전봉준의 생가

전봉준의 생가(전북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사적 제293호

전라도 고부군 궁동면 양교리에서 전창혁(全彰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고부군 향교의 장의를 지낸 바 있는 향반이었던 점으로 보아서 몰락양반, 즉 잔반 출신으로 보인다.

아버지도 의협심이 강하여 군수의 학정에 항거, 민소(民訴)를 제기했다가 구속되어 심한 매질을 당한 끝에 장독으로 죽었다고 한다. 5세 때에 한문 공부를 시작하여 13세 때에는 〈백구시 白驅詩〉라는 한시를 짓기도 했다. 그의 20, 30대에 조선사회는 극히 어수선했다. 개항을 계기로 하여 외세는 물밀듯이 밀려들어왔고, 봉건 말기의 위기적 상황은 날이 갈수록 가중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봉준 역시 나라의 장래에 대해 고민했으며, 그러한 고민의 과정에서 1888년(고종 25) 무렵 손화중(孫和中)과 접촉했다.

1890년 무렵에는 "그의 용무지지로서 동학 교문이 있음을 발견하고", 서장옥(徐璋玉)의 막료인 황하일(黃河一)의 소개로 동학에 입교했다. 뒷날 그는 제2차 재판에서 "동학은 수심하여 충효로써 근본을 삼고 보국안민하려는 것이었다. 동학은 수심경천의 도(道)였다. 때문에 나는 동학을 극히 좋아했다"고 하여 동학에 입교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1892년 무렵에 교주 최시형(崔時亨)에 의하여 고부지방의 접주로 임명되었다. 1893년 2월 무렵 서울로 올라가 대원군을 방문하여 "나의 뜻은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한번 죽고자 하는 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세간에는 전봉준과 대원군 사이에 무슨 밀약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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