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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브리태니커

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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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487(성종 18)
사망 1545(명종 즉위)
국적 조선, 한국

요약 1487(성종 18)~ 1545(명종 즉위).
조선 중기의 척신.

인종의 외척이자 대윤의 거두로 소윤(小尹)과 대립하다가 을사사화 때 화를 당했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임지(任之). 아버지는 파원부원군(坡原府院君) 여필(汝弼)이다. 중종의 비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오빠이다. 무과에 급제한 뒤 벼슬이 경주부윤에 이르렀다.

1523년(중종 18) 충청도수군절도사로 재직중 왜구의 전선(戰船)을 맞아 싸우다 패하여 충군(充軍)되었다. 인종이 세자로 있을 때, 문정왕후(文定王后)가 경원대군(慶源大君)을 낳아 왕위계승의 문제가 발생하자 김안로(金安老)와 함께 세자 보호를 주장하여 문정왕후측과 대립했다.

1537년 10월 김안로가 사사되면서 윤원로(尹元老)·윤원형(尹元衡) 일파가 집권하자, 대윤 일파를 이끌며 윤원형의 소윤(小尹) 일파와 대립했다.

1544년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자 형조판서·찬성에 올라 윤원로·윤원형을 파직시켰으나, 이듬해 7월 인종이 경원대군에게 전위하고 죽어,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었다. 이때 윤원로가 "윤임이 임금을 해하려 한다"고 고변했으나, 오히려 윤인경(尹仁鏡) 등의 탄핵을 받아 해남에 유배되어 윤임은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윤원형이 첩 난정(蘭貞)을 통해 문정왕후에게 "윤임이 조카인 봉성군(鳳成君)을 왕에 추대하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무고하고, "인종이 죽을 당시에 윤임이 계림군(桂林君)을 옹립하려 했다"고 소문을 퍼뜨려 그해 8월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그는 남해로 귀양가던 도중 충주에서 사사되었으며, 대윤과 가까웠던 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 등도 모두 숙청되었다. 무골(武骨)로 성격이 호방했으나 여색(女色)을 좋아하여 임백령(林百齡) 등에게 원한을 샀다. 이이(李珥)는 "임의 죄가 없다"고 한 반면, 이황(李滉)은 "사직(社稷)에 대한 죄가 없지 않다"고 하여 평가가 엇갈리기도 했다. 1577년(선조 10) 세 아들과 함께 신원되었다. 시호는 충의(忠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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