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장성 [千里長城]

고려 성 [城] | 브리태니커

11세기초 고려가 북쪽 변방지역에 쌓은 1,000여 리에 걸친 석축산성.

1032년(덕종 1) 고려는 거란에 억류된 고려인의 송환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정조사(해마다 정월 초하룻날 새해를 축하하러 중국으로 가던 사신)의 파견을 중지했으며, 거란의 사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삭주·영인진(지금의 함남 영흥군)·파천(지금의 함남 안변군)에 성을 쌓았다. 그리고 1033년(덕종 2) 동북 방면의 여진족과 서북 방면의 거란족의 침입에 대비할 목적으로 천리 장성을 축조했다. 유소가 축성을 지휘했는데, 축성 범위는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는 지금의 의주 지역 및 그 부근의 평안북도 맹산·운산·개천 등 13개의 성을 거쳐 함경남도 영흥 지역의 34개의 성에 연결되어 동쪽으로 바다에 이어지고 있다. 천리 장성은 군사적인 기능뿐 아니라 문화권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1033년(덕종 2) 고려는 동북 방면의 여진족과 서북방면의 거란족을 방비할 목적으로 장성을 축조했다. 평장사 유소(柳韶)가 축성을 지휘했는데, 축성범위는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는 지금의 의주지역 및 그 부근의 평안북도 맹산·운산·개천 등 13개 성을 거쳐 함경남도 영흥지역의 34개 성에 연결되어 동쪽으로 바다에 이어지고 있다. 이 장성은 군사적인 기능뿐 아니라 문화권의 구분과 같은 의미도 지닌 것으로 지적된다.

고등 한국사 < 고려와 조선의 성립과 발전 < 고려의 대외 관계와 문화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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