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민 [李義旼]

고려 무신 | 브리태니커

이의민 요약정보

세부정보 확인
태어난 때?
죽은 때1196(명종 26).
소속 국가한국
소속 국가 부속정보고려
직업무신
?~ 1196(명종 26).

고려 중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소금장수인 아버지 선(善)과 여종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경군(京軍)으로 발탁된 후 수박(手搏)을 잘하여 의종에게 총애를 받아 대정에서 별장으로 승진했다. 1170년(의종 24) 무인정변 때 공을 세우고 중랑장이 되었다가 곧 장군으로 승진했다. 1173년(명종 3) 동북면병마사 김보당(金甫當)이 정중부(鄭仲夫)·이의방(李義方)의 토벌과 의종의 복위를 명분으로 정변을 일으켰는데, 이때 최고집정자인 이의방의 명령을 받아 의종을 죽이고 대장군에 올랐다. 이듬해 서경유수 조위총(趙位寵)이 거병하자, 정동대장군 지병마사로서 출전하여 조위총의 군사를 크게 격파하고 그 공으로 상장군이 되었다. 또한 1177년 조위총의 패잔병이 다시 보향산(保香山)에 집결하자, 8장군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승전했다. 1179년 이의방·정중부가 모두 제거된 뒤 새로 집정한 경대승(慶大升)은 무인정변 이후 자행된 무인들의 불법을 문제삼으며 마침내 의종을 살해한 사실까지 거론했다. 이에 두려움을 느끼고 방비를 철저히 했으며, 1181년에는 형부상서장군으로 올랐지만 경대승에게 해를 당할까 두려워 고향인 경주로 갔다. 경대승이 죽은 후 왕의 부름을 받아 병부상서 벼슬을 받고 서울로 올라와 수사공좌복야로 임명되었으며, 실질적으로 무인 최고집정자가 되었다. 당시 왕은 이의민이 난을 일으킬까봐 두려워 미리 그를 중앙정부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1190년 동중서문하평장사 판병부사가 되었다. 1193년 김사미(金沙彌)·효심(孝心)의 난이 발생했을 때 조정에서 파견한 관군이 번번이 패했는데, 기록에 의하면 관군의 패배는 이의민이 신라부흥의 뜻을 가지고 그의 아들이자 토벌대장군인 이지순(李至純)을 통해 민란세력과 내통했기 때문이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조작된 기록이라는 견해와, 이의민이 반란군을 지원했지만 신라부흥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확대를 위해서였다는 견해 등이 있다. 어쨌든 그해 12월 김사미·효심의 난은 진압되고 이듬해 이의민은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전주(銓注:관리임명권)를 마음대로 하며 독재 권력을 휘둘렀으며, 그의 아들들도 아버지의 세도를 믿고 횡포하여 인심을 잃었다. 아들 지영(至榮)이 최충헌(崔忠獻)의 동생 충수(忠粹)의 집비둘기를 빼앗은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1196년 최충헌 형제에게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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