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거세 [朴赫居世]

신라 시조 | 브리태니커

박혁거세 요약정보

세부정보 확인
태어난 때BC 69
죽은 때AD 4.
소속 국가한국
소속 국가 부속정보신라
직업시조
BC 69~ AD 4.

신라의 시조(BC57~AD 4 재위).

왕호는 거서간(居西干). 씨의 시조이며 일명 불구내(弗矩內)라고도 한다. 비는 사량(沙梁) 출신인 알영부인(閼英夫人)이다. 고조선의 멸망과 잇따른 북방의 정치적 격변 등에 따른 유이민의 파동으로 남부지역에는 많은 소국이 형성되었는데, 경주평야를중심으로 급량(及梁)·모량(牟梁:혹은漸梁)·사량(沙梁)·본피(本彼)·한지(漢祗:혹은 漢岐)·습비(習比) 등 6족의 후예들이 사로국(斯盧國)을 형성, 양산촌(楊山村)·고허촌(高墟村)·진지촌(珍支村)·대수촌(大樹村)·가리촌(加利村)·고야촌(高耶村) 등 6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삼국유사〉·〈삼국사기〉에 의하면, 고허촌장 소벌공(蘇伐公)이 양산 기슭 나정(蘿井) 곁 숲속에서 큰 알을 발견했는데, 알 속에서 어린아이가 나와 이 아이를 길렀다. 그의 나이 13세가 되던 해 6촌의 촌장들은 그의 출생이 신이(神異)하다고 하여 왕으로 삼았다고 한다.

나라이름은 서라벌(徐羅伐:徐伐·徐那伐)이라 하고 즉위와 동시에 알영을 왕비로 맞아들였는데, 알영은 사량촌의 알영정 가에 출현한 계룡(谿龍)이 그 왼쪽 갈비에서 탄생시킨 용녀라고 한다. 즉위 후 왕비와 함께 6부를 돌며 농사와 양잠을 장려했으며, 서울을 금성(金城)으로 정하고 성을쌓았다. 죽은 뒤 담암사(曇巖寺) 북쪽에 있는 사릉(蛇陵)에 장사 지냈다. 박[瓠]과같이 생긴 알에서 나왔다고 하여 박(朴)이라는 성을 붙였으며, 혁거세(赫居世)는 이름이 아닌 존호(尊號)로, 불구내라고 한다. 이는 '혁'(赫)을 뜻으로읽고 '거'(居)를 음으로 읽은 '불구'와, '세'(世)를 뜻으로 읽은 '내'를 합한 것으로 '뉘', 즉 '밝은 세상'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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