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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의 침입 [契丹 ― 侵入]

고려 역사 | 브리태니커

993년(성종 12)부터 1019년(현종 10)에 이르기까지 3차례에 걸친 거란의 고려 침입.

10세기초부터 14세기말까지 중국대륙에서는 거란·여진·몽고 등 북방민족이 대두하여 중원의 한족(漢族)을 압박했다. 고려는 건국 이후 중국의 역대왕조와 친선관계를 유지했으나, 북방민족에 대해서는 서로 대립정책을 취했다. 특히 거란에 대해서는, 동족인 발해(渤海)를 멸망시킨 국가로 보고 배척했다. 거란은 942년(태조 25) 고려에 사신을 보내어 교빙을 청했으나, 태조는 이를 거절했고, 나아가 훈요10조(訓要十條)에서도 거란을 금수(禽獸)의 나라로 단정하여 경계하도록 했다. 그후 역대왕은 이러한 태조의 반거란정책을 계승했다. 정종(定宗)은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30만의 광군(光軍)을 조직했고, 광종(光宗)은 서북지역에 여러 성을 쌓아 거란에 대한 경계를 엄하게 했다. 또한 이 무렵 발해의 유민들은 압록강 중류지역에 정안국(定安國)을 세우고 송(宋)·고려 등과 통교하면서 거란을 적대시했고, 송과 연합하여 거란을 협공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국제정세에 큰 위협을 느낀 거란은 배후의 강적인 고려를 견제하기 위해, 국내정치가 안정되는 성종대(聖宗代)에 이르러 986년에 먼저 압록강 중류지역의 정안국을 쳐서 멸망시키고, 991년에는 압록강 하류의 여진족을 경략한 후 고려를 침략하기 시작했다.

993년에 거란의 소손녕(簫遜寧)은 80만의 군사를 이끌고 서북면으로 쳐들어왔다. 이때 고려에서는 항복하자는 의견과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주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서희(徐熙)는 이에 반대하고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벌였다. 고려는 송과의 관계를 끊고, 거란을 적대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거란군을 철수시키고 나아가 압록강 동쪽 약 280리의 땅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후 고려는 압록강 동쪽의 여진을 몰아내면서 흥화진(興化鎭:의주)·용주(龍州:용천)·통주(通州:선천)·철주(鐵州:철산)·구주(龜州:구성)·곽주(郭州:곽산) 등 강동6주(江東六州)에 성을 쌓아 이 지역을 고려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이처럼 고려는 강동6주를 차지하여 군사거점으로 삼으면서 송에 사신을 보내 군사 원조를 청하는 등 송과 교류를 계속했다. 그러자 거란은 이에 큰 불만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거란은 강동6주의 전략적 가치를 깨닫고 그것을 탈환하고자 했다. 이렇게 기회를 노리던 중 고려에서 강조(康兆)가 목종(穆宗)을 죽이고 현종(顯宗)을 추대하는 정변(政變)이 일어나자 이를 구실로 1010년에 다시 고려에 침입했다. 그리하여 한때 개경이 함락되고 국왕이 나주(羅州)까지 피난가기도 했으나, 거란은 고려 국왕의 친조(親朝)라는 실리도 없고 실현가능성도 희박한 강화조건에 만족하고 철수했다. 이는 흥화진·구주·통주·서경 등 요새지를 함락하지 못한 채 개경까지 깊이 들어온 상태에서 병참선이 차단되어 역습당할 위험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뒤 거란은 고려가 국왕의 친조약속을 지키지 않고, 강동6주의 반환요구도 거절하자 1018년(현종 9) 또다시 쳐들어왔다. 이에 고려에서는 강감찬 등이 흥화진·구주 등지에서 거란군에게 군사적으로 큰 타격을 주어 그들의 의도를 제지시켰다.

거란이 고려를 침략한 목적은 영토를 확장하고, 고려와 송의 반거란 연합전선의 형성을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거란은 소손녕과 서희가 회담을 할 때부터 고구려의 영토는 거란의 소유라면서 고려가 차지하고 있던 고구려의 영토를 요구했고, 그후에도 고려가 개척한 강동6주를 계속 요구했다. 또한 당시 거란은 연운16주(燕雲十六州)를 둘러싸고 송과 대치했으며, 압록강 유역에서 거란에 의해 밀려난 여진족과 발해유민과도 적대관계를 계속하고 있었다. 특히 발해유민도 송과 군사적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거란에 대항하고자 했는데, 여기에 고려가 가세한다면 거란에게는 큰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거란은 송을 침략하기에 앞서 먼저 고려를 침으로써 배후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고자 했다. 그러나 거란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1019년 고려와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고려는 북방에 대한 경계강화를 위해 1029년 개경에 나성(羅城)을 쌓았다. 또 1033~44년 전국경선에 걸쳐 천리장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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